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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식의 신 미국 유람〈32〉 유타주 신들의 계곡

  온천지가 온통 붉은 황톳빛 사암이다. 울퉁불퉁 포장도 안 된 거친 흙과 돌 더미 자갈밭 길을 따라간다.  17마일이나 되는 고행의 길은 마치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험난한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것만 같다.     설마 당국이 돈이 없어 포장하지 않았을까. 예수가 만백성을 위해 험난한 길을 걸었음을 상징하기 위해 그냥 내버려 둔 게 아닐까. 자동차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먼 길의 성지에 왔다는 자부심과 위로는 느낀다.     이곳은 유타주의 숨은 보석 ‘신들의 계곡(Valley of the Gods)’ 이다. 원래 이곳은 아나사지 인디언 원주민들이 살았던 곳이다. 36만 에이커의 광활한 계곡 속에는 수많은 바위가 군상을 이루며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곳은 개발 자체가 안된 곳이어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워낙 유명한 모뉴먼트 밸리가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그 명성에 가려진 탓도 있다. 그래도 알음알음으로 알려져 한인들은 꽤 많이 찾는다. 이곳을 다녀간 한인들은 원래 영어 이름에서 나온 ‘신들의 계곡’보다는 그냥 편하게 ‘하나님의 계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마 한인 중에 크리스천이 많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필자 역시 여러 차례 이곳을 방문하면서 함께 왔던 크리스천 일행들로부터 귀동냥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이곳을 하나님의 계곡이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털털거리며 계곡 일대를 한 바퀴 돌아보면 성경에 나오는 열두 제자가 일렬로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또 ‘최후의 만찬’ 그림과 비슷한 장소도 있고 사도 바울 상, 성모 마리아상 같은 바위도 보인다. 기기묘묘한 바위 틈새를 헤집고 다니다 보면 어떤 곳은 골고다 언덕이 되기도 하고 어떤 곳은 예수가 태어난 마구간이 된다.     일행은 그런 곳마다 멈춰 서서 사진 좀 찍고 가자고 난리들이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생전 처음 성경의 무대 같은 곳에 왔으니 흥분되는 것은 당연할 터이다. 예수의 몸과 피를 의미하는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의식이 성찬식인데 그렇다면 사진만 실컷 찍고 갈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찬 의식이라도 하고 간다면 그 또한 큰 은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신들의 계곡 바로 옆에는 구스넥 주립공원(Goosenecks State Park)이라는 또 다른 명소가 있다. 유타주 남쪽을 굽이굽이 흐르는 샌 후안 리버 강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인데 멕시칸 햇(Mexican Hat)이라는 곳에서 멀지 않다. 이곳은 구스넥이란 이름 그대로 거위 목처럼 구불구불한 전망이 기가 막힌다. 하지만 이곳 역시 유명한 홀스슈벤드(Horseshoe bend) 보다는 덜 알려져 있다. 그래도 주변 풍광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 계곡은 억겁 세월 동안 깎이고 씻겨 내려가면서 수천 피트 벼랑을 만들었고 그 아래로 마치 커다란 구렁이가 구불구불 기어가듯 깊은 강이 흐르는데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현기증을 자아낸다.       신들의 계곡 서쪽 입구에는 집 한 채가 외롭게 있는데 그런 곳에서 하루쯤 묵어도 특별한 추억이 될 것 같다. 숙박비는 10년 전에 170불이었는데 지금은 얼마나 받는지 알아보고 가는 게 좋겠다. 하느님의 계곡은 교통이 아주 불편한 오지 중의 오지여서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대신 어렵게 찾아갈수록 은혜도 더 많이 받는다고 했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 여행메모 신들의 계곡 멀지 않은 곳에 서부 영화의 성지가 된 모뉴먼트 밸리가 있다. 인디언 원주민들이 관리하는 그곳은 워낙 유명해서 관광객도 많고 입장료도 내야 한다. 이에 반해 신들의 계곡은 모뉴먼트 밸리의 축소판 같은 곳이어서 입장료도 없고 인적도 드물어 색다른 맛이 있다. 유타주 261번 도로와 163번 도로가 만나는 곳 10마일 언저리에 작은 출입구 사인이 있다.            김평식 여행등산전문가김평식 신유 계곡 일대 계곡 서쪽 구스넥 주립공원

202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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